[국외] 2017극지 하계 연구캠프 – 남극실험

해양저서생태학연구실l 2018-09-22l 조회수 1
  • 저서미세조류 실험
조간대부터 화려한 색의 동식물이 즐비한 열대바다를 생각해보면, 확실히 남극의 조간대는 채도가 낮습니다. 그렇다고 그 곳에 아무런 생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 전에도 기록했듯이 삿갓조개나 갯지렁이 등이 꼭꼭 숨어있지요. 숨바꼭질의 달인인 이 생물들은 누구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을까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늘 연구하던 갯벌에도 있는 그 녀석. 저서미세조류입니다. 오늘은 저서미세조류를 현미경으로 관찰했습니다. 해안에서 저서미세조류가 있을 법한 작은 돌도 하나 채집해왔고, 다이빙팀으로부터 큰띠조개(Laternula elliptica)의 위내용물도 전달받았습니다. 큰띠조개는 자갈이 섞인 해저 뻘 속에 몸을 깊숙히 파묻은 채로 입·출수공만 노출시킨 채로 수중의 식물플랑크톤 또는 저서규조류 등을 여과섭식하는 이매패류입니다. 먼저 큰띠조개의 위내용물부터 확인했습니다. 20171224_172527 흠……. 하지만 큰 수확은 없었습니다. 녹황색의 무언가가 보이기는 하는데, 내용물이 이미 소화가 된 것 같았습니다. 아무래도 위내용물을 확인해보고 싶다면 채집 직후에 해부하여 확인해 보아야겠네요. 그렇다면 돌 표면을 칫솔로 열심히 긁어내어 현미경으로 관찰합니다. 돌 부착 규조류를 살아있는 상태로 관찰할 수 있을까요? 20171224_174734이번에는 성공했네요! 개체수가 아주 많지는 않았지만 꽤 많은 저서규조류들이 관찰되었답니다. 이들이 엽록소를 어떻게 가지고 있는지, 움직임은 있는지. 오직 남극 현장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생동감 있는 저서규조류를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더 다양한 규조류들이 있을지 기대되네요. 다음에는 더 다양한 시료에 도전하여 규조류를 관찰해 보아야겠습니다.
  • 요각류 관찰과 1차 생산 측정
저희 서울대 팀이 속해있는 Champ 2030 팀에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그 중 다이빙을 담당하시는 분들도 계셔서 가끔씩 저희에게 저희가 접근할 수 없는 바다 밑 신기한 샘플들을 보여주시곤 하신답니다. 이번에는 조하대 생물 대신 마리안 소만 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돌섬 시료를 받았습니다. 돌섬 조수웅덩이에 매트를 이루는 조류 시료인데, 처음에는 조류 시료만 있는 줄 알았더니 한참 동안 가만히 두고 있으니까 작은 빨간색 생물이 매트에서 헤엄쳐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또는 실처럼 가는 생물이 바닥에서 꼬물꼬물 헤엄치기도 하였죠. 그 아이들이 신기하여 스포이드로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모았고, 그렇게 그들은 조수웅덩이 중형저서동물 샘플이 되었습니다.

20171228_101514<빨간 생물 (요각류, Tigriopus kingsejongensis) 중에도 검은 뭔가가 달려있는 개체가 있는데, 그 검은 물체는 요각류 암컷의 알이랍니다.>

이렇게 조류 매트에서 저서동물 샘플링이 끝나고 남은 조류 매트는 광합성을 측정하는 데에 사용하였습니다. 실험에 사용한 기계는 연구실에서 이전부터 소개해드렸던 엽록소 형광측정기인 Diving-PAM II (pulse amplitude modulated fluorometer)입니다. 남극에 도착한 이후에 아직까지 그래프가 깨끗하게 나오던 시료를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뭉쳐진 조류 매트에서 전형적인 그래프를 얻을 수 있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이런 쾌감이 과학을 하는 사람들의 소소한 낙이 아닐까요. 20171228_160212 오늘 이 실험에서 측정이 잘되는 시료가 있다는 희망을 얻었기 때문에 앞으로 더 재미있는 실험들을 해보려고 생각 중이랍니다.
  • 부착규조류 관찰
이때껏 남극 현장 사진을 보시며 혹시 눈치 채셨나요? 바톤 반도는 경성 암반 또는 자갈로 이루어진 해안이 조간대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주로 갯벌에 살고 있는 규조류를 분석해 왔던 자희로서는 퍽 낯설었지요. 도대체 이 추운 남극 바다에, 돌 뿐인 이곳에서 규조류는 어디 살고 있을까요? 규조류는 바다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1차 생산자. 이들은 사실 아주 풍부하게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조간대에 서식하는 해조류에 딱 붙어 살기도 하고, 돌에 붙어 살기도 합니다. 2018

<부착 규조류를 분석하기 위해 채집해온 해조류>

2018-1<돌에 부착한 규조류를 분석하기 위해 채집해온 큰 자갈들>

미끈미끈해 보이는 해조류와 바닷가에 있는 평범한 돌덩어리. 이런 데에 정말 규조류가 붙어 사냐구요? 그럼 일단 붙어 있는 친구들을 떼어내 볼까요?

2018-2<깨끗한 칫솔로 돌에 붙은 규조류를 분리하는 모습>

바로 아래 사진과 같은 모습이지요.

2018-3<해조류 부착 규조류>

2018-4<돌 부착 규조류>

마리안 소만 옆쪽에 있는 포터 소만에서는 돌 또는 해조류에 부착하여 서식하는 규조류만을 연구한 논문이 출판되기도 했답니다. 심지어 꽤 다양한 규조류가 서식하고 있다고 보고되어 있습니다. 척박해 보이는 환경에도 살아있는 것들이 가득합니다. 생명으로 가득한 남극 바다. 다음엔 또 어떤 것을 볼 수 있을지 기대되지 않으세요?
  • 1차생산 실험
이곳 세종기지가 위치한 킹조지섬은 위도가 높은 탓에 독특한 상황이 연출됩니다. 여름철에는 20시간 가까이 해가 지지 않고, 겨울철에는 3시간 정도 밖에 해가 떠있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국도 하지와 동지의 밤낮 길이를 비교한다면 몇 시간 차이가 나긴 하지만 이곳은 그 차이가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고 할 수 있죠. 그렇다면 이곳에 서식하는 일차 생산자는 어떠한 생체리듬을 가지고 있을까요? 이전에 소개해드린 남극의 규조류와 해조류는 여름철에 해가 비치는 스무 시간 동안 계속해서 광합성을 할까요? 아니면 겨울 동안 해가 비치던 세 시간 정도만 광합성을 할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6시까지 광합성을 하는 것일까요?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질문의 대답을 찾기 위해 간단한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최대한 현장 조건과 비슷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야외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고, 실험 시작 몇 시간 전 웅덩이 안에 실험이 정말 잘 될 것만 같은 초록초록한 돌을 넣어두었답니다. 이 초록초록한 부분은 사실 돌 표면에 착생조류가 붙어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랍니다. 웅덩이에 흐르는 물은 기지 앞 해수를 끌어와 사용했습니다. 착생조류의 광합성률을 측정하는 장비는 이전에도 몇 번 소개 드린 Diving-PAM을 사용하였습니다. 실험 대상을 해치는 일 없이 실험을 수행할 수 있고, 한 번 측정하는데 2-3분 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이번 실험을 진행하는 데에 있어서 딱 적합한 장비였답니다. 20180108_100121실험 시작은 전날 저녁 10시부터였습니다. 너무 깜깜해지면 어디에 조류가 붙어있는지 식별할 수 없기 때문에 약간의 빛이 있을 때부터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매 시간마다 측정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다른 대원들은 모두 자러 갈 시간인 새벽 시간에도 매 정각에 나와서 한 번씩 찍어줘야 했습니다. 밤이 깊어질수록 안개가 자욱하게 끼고 날씨가 점점 더 쌀쌀해지면서 이러다 이렇게 얼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저 앞바다에서 묘령의 여인이 바다로 들어오라고 손짓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잠깐 잠깐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아침이 빨리 밝아오고 점점 날이 개면서 그러한 불안감은 금새 사라졌답니다.   20180108_215023그렇게 새벽부터 한 시간, 한 시간 찍으면서 실시간으로 실험값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 지도 확인하고, 중간중간 비는 시간에는 따뜻한 실내에 들어가서 자료들을 정리하고, 주변 풍경도 감상하다 보니 절대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실험의 끝이 점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배한나 학생도 실험에 참여하여 측정이 무사히 끝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답니다. 20180108_192033실험하면서 힘든 순간이 많았지만 다행히 밤 10시가 되어 24시간 동안 진행했던 실험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마침 날씨가 갑자기 안좋아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실험을 정리하였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요? 그건 다음에 기회를 봐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살짝만 알려드리자면 아래 그래프는 매 시간마다 측정한 빛의 세기와 착생 조류의 광합성률입니다. 빛이 없는 밤에는 거의 광합성을 하지 않다가 아침이 되면서 점점 일을 많이 하고, 저녁이 되면서 다시 감소하는 경향이 나타났답니다. 점심 시간에는 잠깐 능률이 떨어지는걸 보니 미세조류도 강한 태양은 피하고 싶은가 봅니다. 2018-12018-2
  • 해조류 표본 제작
한국에 있는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가 깜짝 놀라며 반문했습니다. “남극에 해조류가 있어?” 남극에 식물이 산다는 것이 친구에겐 퍽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남극엔 바다에도 육지에도 꽤 다양한 식물이 살고 있습니다. 육지의 경우, 이 곳 바톤반도에서는 작은 현화식물이나, 이끼류가 흔히 볼 수 있는 종류이지요. 바다 역시 많은 식물이 살고 있습니다. 저희가 연구하는 분야 중 하나인 규조류도 아주 작은 식물(microalgae) 중 하나로, 남극에서 매우 많이 자라고 있죠. 또한 친구와 제가 이야기한 큰 해조류(macroalgae)들 역시 다양하고 높은 생물량을 나타내고 있습니다.Kim et al. (2001) <2001년 Ocean and Polar Research 지에 발표된 Kim et al. 논문의 그림 중 하나입니다. 이 곳 킹조지섬에서의 해조류 종 조성을 보고한 논문이지요.> 15년 전에 발표한 논문에 이미 40여종 이상의 해조류가 보고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저희가 조간대 조사만 나가보아도 10여종 이상의 해조류를 쉽게 채집할 수 있을 정도이지요. 때문에 저희에게 생긴 작은 문제가, 해조류의 정확한 종 이름을 알아내는데 어려움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종류가 많은 데다, 한국에서 보던 해조류와는 다르게 생겼으니 고심하게 될 수 밖에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남극에서 채집한 해조류를 건조 표본으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래 사진과 같이요!

20180204_174505<해조류를 정성껏 펼쳐 만든 건조 표본>

도화지 위에 해조류를 예쁘게 펼치고, 곰팡이가 생기지 않도록 바싹 말립니다. 약 15종 정도의 해조류를 종별로 채집하여 표본을 만들었습니다. 이 해조류를 제대로 동정하고 나면, 어떤 규조류가 어떤 해조류에 부착하여 사는지도 알 수 있고, 어떤 해조류가 1차 생산량이 높게 나타나는 지도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겠지요! 20180204_174152

<압화처럼 예쁜 해조류 건조표본>

열심히 만들어 놓은 건조 표본들이 꽤 보기에 좋아, 작품처럼 들고 사진을 찍어 보기도 했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작품을 만든 김호상 학생이 환하게 웃고 있네요. 조만간 이 예쁜 해조류들이 제 이름들을 찾을 수 있겠지요? 20180204_174147
  • 남극 규조류 관찰
남극 조사 초반에, 과제 책임자이신 안인영 박사님께서 엄청 신이 나신 얼굴로 외치셨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한나씨, 저것 봐요. 남극 해안을 규조류가 저렇게 많이 뒤덮고 있다니까? 신기하지 않아요?” 박사님의 목소리에 열정과 애정이 담뿍 담겨 있습니다. 박사님의 손 끝이 가리키는 곳에, 규조류가 돌 위를 뒤덮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이 추운 남극, 이 혹독한 환경에서 저 작고 작은 식물들이 잔뜩 모여 살고 있는 것입니다.

2018<갈색의 실타래 같은 것이 규조류입니다>

조간대만이 아닙니다. 2016년 안인영 박사님 논문에 따르면 저희가 조사하고 있는 마리안 소만 조하대에도 규조류가 번성하여 덤불 형태를 이루고 있습니다. Ahn (2016) <규조류가 어디있냐구요? 사진서 온통 연갈색으로 뒤덮고 있는 덤불들이 다 규조류입니다. 출처: Ahn (2016)> 재미있게도 남극에 있는 많은 규조류들이 체인 형태를 이루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과 같이요. 2018-1

<체인 형태를 이루고 있는 규조류. 해부 현미경 관찰>

남극에 있는 많은 규조류들이 왜 이러한 형태를 선호하는 것일까요? 체인 형태가 극지 환경에서 서식하는데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보면 볼수록 궁금한 것이 많아집니다. 부지런히 공부하여 남극 규조류의 이야기들을 더 많이 들려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남극의 중형저서동물
남극의 좋은 점 중 하나는 교수님과 유익한 수다(?)를 많이 떨 수 있다는 점입니다. 송교수님께서 중형저서동물을 보시는 동안, 저는 옆에서 규조류를 보고 있습니다. 한참 집중하다가도, 이따금씩 신기한 생물이나 알려주시고 싶은 것이 있으시면 저를 부르시곤 합니다. 20180217_134333

<해부현미경 사진입니다. 중앙에 입실론과 유사하게 생긴 Nematoda가 보이시나요? 저는 난생 처음으로 저렇게 요상하게 생긴 Nematoda 보았습니다!>

저도 규조류를 보다 문득문득 생기는 의문들을 자유롭게 여쭤보며 조언을 구하곤 합니다. 막상 생각해보니 일방적으로 저는 배우며 받기만 하고 있네요. 흠흠, 얼른 무럭무럭 자라 교수님께 은혜 갚는 착한 학생들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