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 2017극지 하계 연구캠프 – 남극실험
- 저서미세조류 실험
- 요각류 관찰과 1차 생산 측정
<빨간 생물 (요각류, Tigriopus kingsejongensis) 중에도 검은 뭔가가 달려있는 개체가 있는데, 그 검은 물체는 요각류 암컷의 알이랍니다.>
이렇게 조류 매트에서 저서동물 샘플링이 끝나고 남은 조류 매트는 광합성을 측정하는 데에 사용하였습니다. 실험에 사용한 기계는 연구실에서 이전부터 소개해드렸던 엽록소 형광측정기인 Diving-PAM II (pulse amplitude modulated fluorometer)입니다. 남극에 도착한 이후에 아직까지 그래프가 깨끗하게 나오던 시료를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뭉쳐진 조류 매트에서 전형적인 그래프를 얻을 수 있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이런 쾌감이 과학을 하는 사람들의 소소한 낙이 아닐까요. 오늘 이 실험에서 측정이 잘되는 시료가 있다는 희망을 얻었기 때문에 앞으로 더 재미있는 실험들을 해보려고 생각 중이랍니다.- 부착규조류 관찰
<부착 규조류를 분석하기 위해 채집해온 해조류>
<돌에 부착한 규조류를 분석하기 위해 채집해온 큰 자갈들>
미끈미끈해 보이는 해조류와 바닷가에 있는 평범한 돌덩어리. 이런 데에 정말 규조류가 붙어 사냐구요? 그럼 일단 붙어 있는 친구들을 떼어내 볼까요?<깨끗한 칫솔로 돌에 붙은 규조류를 분리하는 모습>
바로 아래 사진과 같은 모습이지요.<해조류 부착 규조류>
<돌 부착 규조류>
마리안 소만 옆쪽에 있는 포터 소만에서는 돌 또는 해조류에 부착하여 서식하는 규조류만을 연구한 논문이 출판되기도 했답니다. 심지어 꽤 다양한 규조류가 서식하고 있다고 보고되어 있습니다. 척박해 보이는 환경에도 살아있는 것들이 가득합니다. 생명으로 가득한 남극 바다. 다음엔 또 어떤 것을 볼 수 있을지 기대되지 않으세요?- 1차생산 실험
이곳 세종기지가 위치한 킹조지섬은 위도가 높은 탓에 독특한 상황이 연출됩니다. 여름철에는 20시간 가까이 해가 지지 않고, 겨울철에는 3시간 정도 밖에 해가 떠있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국도 하지와 동지의 밤낮 길이를 비교한다면 몇 시간 차이가 나긴 하지만 이곳은 그 차이가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고 할 수 있죠. 그렇다면 이곳에 서식하는 일차 생산자는 어떠한 생체리듬을 가지고 있을까요? 이전에 소개해드린 남극의 규조류와 해조류는 여름철에 해가 비치는 스무 시간 동안 계속해서 광합성을 할까요? 아니면 겨울 동안 해가 비치던 세 시간 정도만 광합성을 할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6시까지 광합성을 하는 것일까요?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질문의 대답을 찾기 위해 간단한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최대한 현장 조건과 비슷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야외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고, 실험 시작 몇 시간 전 웅덩이 안에 실험이 정말 잘 될 것만 같은 초록초록한 돌을 넣어두었답니다. 이 초록초록한 부분은 사실 돌 표면에 착생조류가 붙어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랍니다. 웅덩이에 흐르는 물은 기지 앞 해수를 끌어와 사용했습니다. 착생조류의 광합성률을 측정하는 장비는 이전에도 몇 번 소개 드린 Diving-PAM을 사용하였습니다. 실험 대상을 해치는 일 없이 실험을 수행할 수 있고, 한 번 측정하는데 2-3분 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이번 실험을 진행하는 데에 있어서 딱 적합한 장비였답니다. 실험 시작은 전날 저녁 10시부터였습니다. 너무 깜깜해지면 어디에 조류가 붙어있는지 식별할 수 없기 때문에 약간의 빛이 있을 때부터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매 시간마다 측정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다른 대원들은 모두 자러 갈 시간인 새벽 시간에도 매 정각에 나와서 한 번씩 찍어줘야 했습니다. 밤이 깊어질수록 안개가 자욱하게 끼고 날씨가 점점 더 쌀쌀해지면서 이러다 이렇게 얼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저 앞바다에서 묘령의 여인이 바다로 들어오라고 손짓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잠깐 잠깐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아침이 빨리 밝아오고 점점 날이 개면서 그러한 불안감은 금새 사라졌답니다. 그렇게 새벽부터 한 시간, 한 시간 찍으면서 실시간으로 실험값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 지도 확인하고, 중간중간 비는 시간에는 따뜻한 실내에 들어가서 자료들을 정리하고, 주변 풍경도 감상하다 보니 절대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실험의 끝이 점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배한나 학생도 실험에 참여하여 측정이 무사히 끝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답니다. 실험하면서 힘든 순간이 많았지만 다행히 밤 10시가 되어 24시간 동안 진행했던 실험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마침 날씨가 갑자기 안좋아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실험을 정리하였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요? 그건 다음에 기회를 봐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살짝만 알려드리자면 아래 그래프는 매 시간마다 측정한 빛의 세기와 착생 조류의 광합성률입니다. 빛이 없는 밤에는 거의 광합성을 하지 않다가 아침이 되면서 점점 일을 많이 하고, 저녁이 되면서 다시 감소하는 경향이 나타났답니다. 점심 시간에는 잠깐 능률이 떨어지는걸 보니 미세조류도 강한 태양은 피하고 싶은가 봅니다.
- 해조류 표본 제작
한국에 있는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가 깜짝 놀라며 반문했습니다. “남극에 해조류가 있어?” 남극에 식물이 산다는 것이 친구에겐 퍽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남극엔 바다에도 육지에도 꽤 다양한 식물이 살고 있습니다. 육지의 경우, 이 곳 바톤반도에서는 작은 현화식물이나, 이끼류가 흔히 볼 수 있는 종류이지요. 바다 역시 많은 식물이 살고 있습니다. 저희가 연구하는 분야 중 하나인 규조류도 아주 작은 식물(microalgae) 중 하나로, 남극에서 매우 많이 자라고 있죠. 또한 친구와 제가 이야기한 큰 해조류(macroalgae)들 역시 다양하고 높은 생물량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2001년 Ocean and Polar Research 지에 발표된 Kim et al. 논문의 그림 중 하나입니다. 이 곳 킹조지섬에서의 해조류 종 조성을 보고한 논문이지요.> 15년 전에 발표한 논문에 이미 40여종 이상의 해조류가 보고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저희가 조간대 조사만 나가보아도 10여종 이상의 해조류를 쉽게 채집할 수 있을 정도이지요. 때문에 저희에게 생긴 작은 문제가, 해조류의 정확한 종 이름을 알아내는데 어려움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종류가 많은 데다, 한국에서 보던 해조류와는 다르게 생겼으니 고심하게 될 수 밖에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남극에서 채집한 해조류를 건조 표본으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래 사진과 같이요!
<해조류를 정성껏 펼쳐 만든 건조 표본>
도화지 위에 해조류를 예쁘게 펼치고, 곰팡이가 생기지 않도록 바싹 말립니다. 약 15종 정도의 해조류를 종별로 채집하여 표본을 만들었습니다. 이 해조류를 제대로 동정하고 나면, 어떤 규조류가 어떤 해조류에 부착하여 사는지도 알 수 있고, 어떤 해조류가 1차 생산량이 높게 나타나는 지도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겠지요!<압화처럼 예쁜 해조류 건조표본>
열심히 만들어 놓은 건조 표본들이 꽤 보기에 좋아, 작품처럼 들고 사진을 찍어 보기도 했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작품을 만든 김호상 학생이 환하게 웃고 있네요. 조만간 이 예쁜 해조류들이 제 이름들을 찾을 수 있겠지요?- 남극 규조류 관찰
<갈색의 실타래 같은 것이 규조류입니다>
조간대만이 아닙니다. 2016년 안인영 박사님 논문에 따르면 저희가 조사하고 있는 마리안 소만 조하대에도 규조류가 번성하여 덤불 형태를 이루고 있습니다. <규조류가 어디있냐구요? 사진서 온통 연갈색으로 뒤덮고 있는 덤불들이 다 규조류입니다. 출처: Ahn (2016)> 재미있게도 남극에 있는 많은 규조류들이 체인 형태를 이루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과 같이요.
<체인 형태를 이루고 있는 규조류. 해부 현미경 관찰>
남극에 있는 많은 규조류들이 왜 이러한 형태를 선호하는 것일까요? 체인 형태가 극지 환경에서 서식하는데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보면 볼수록 궁금한 것이 많아집니다. 부지런히 공부하여 남극 규조류의 이야기들을 더 많이 들려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남극의 중형저서동물
<해부현미경 사진입니다. 중앙에 입실론과 유사하게 생긴 Nematoda가 보이시나요? 저는 난생 처음으로 저렇게 요상하게 생긴 Nematoda 보았습니다!>
저도 규조류를 보다 문득문득 생기는 의문들을 자유롭게 여쭤보며 조언을 구하곤 합니다. 막상 생각해보니 일방적으로 저는 배우며 받기만 하고 있네요. 흠흠, 얼른 무럭무럭 자라 교수님께 은혜 갚는 착한 학생들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