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 2017극지 하계 연구캠프 – 남극생활
- 보급선, 하역, 성공적!
<컨테이너에서 꺼내기 시작한 식자재들. 이 양은 전체 식자재량의 반의 반도 되지 않습니다!>
사실 오늘은 정말 고비였습니다. 식자재라곤 깍두기조차 남아있지 않은 상황. 냉동창고는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예정보다 보급선이 거의 한달이 늦게 들어왔으니, 다들 그야말로 역대급이라며 혀를 내둘렀거든요. 상황이 이러니 한 시라도 빨리 식자재를 창고에 옮겨야 합니다. 기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역에 동원되었습니다.<무겁기 짝이 없는 액체류(우유 및 주스)의 행진에 지쳐 잠깐 쉬는 시간>
그래도 다들 웃으며 일했습니다. 너무 늦어진 보급으로 인해, 많이 상해버린 야채를 본 조리장님의 얼굴이 때때로 심각해지셨지만요. 꾸역꾸역 들어오는 식자재에 저희는 환호성을 질러야 할지 비명을 질러야 할지 몰랐습니다. 두툼한 작업복을 입고 있던 사람들은 급기야 외투를 벗어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새참 만들 재료조차 없었기에, 우리는 급한대로 아이스크림 상자를 뜯어 휴식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메로나 새참 시간!>
점심을 먹고 난 뒤에도 식자재 운반은 계속되었습니다. 그 다음 운반은 레일 없이 직접 날라야 했기 때문에 사진 찍을 힘도 시간도 없어 사진이 남아있지 않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모든 식자재 하역 작업은 오후 5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습니다. 부랴부랴 씻고 저녁을 먹으러 갑니다. 조리장님이 급히 꺼내 놓은 고기 하나로 모두들 행복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마무리 될까 싶었지만, 세종기지는 밤이 늦어도 해가 지지 않는 동네지요. 게다가 오늘은 남극에 온 이후로 가장 날씨가 좋은 날이었습니다. 아침부터 하역을 하느라 분명 지친 상태였지만 김호상 학생은 1차 생산력을 측정하는 PAM이라는 장비를 꺼내듭니다. 전우조인 저도 옷을 껴입고 산책(?)삼아 밖을 나섭니다. (현장조사는 2인 이상이 수행하는 것이 철칙입니다.) 점차 이곳 환경도 익숙해지고 있고, 조사에 필요한 물품도 보급이 되었으니 이제부터 신나게 탐구할 일만 남았습니다.<1차 생산을 측정하는 김호상 학생 뒤, 파란 하늘과 보급선>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는 턱끈펭귄>
- 펭귄과 산책
- 세종기지의 체육대회
- 난생 처음 겪은 눈폭풍
<왼쪽에 보이는 것이 연구원들 물건이 담긴 박스입니다. 뚜껑이 날아갔다는 말에 다들 내려와서 보수 작업 중입니다>
- 폭풍 후 세종기지
- 안전 기원 행사
- 30주년 기념행사
오늘(1월 23일)은 하계대원들 중 반 이상이 출남극을 하고, 남극세종과학기지 준공 30주년 기념행사를 위해 해양수산부 장관님을 비롯한 귀빈 및 기자분들이 입남극을 하는 날입니다. 무척 바쁘고 분주한 날이겠지요? 오전에는 정든 하계대원들을 떠나 보냈습니다. 분명 정이 들었을 텐데 떠나는 이들의 표정은 왜 이리 하나같이 밝은 걸까요? 괜히 괘씸해서 물이라도 뿌려주고 싶었지만 웃으며 손을 흔들며 보냈습니다.<짐과 사람을 가득 싣고 떠날 준비 중인 조디악>
<다들 나와서 떠나는 이들을 배웅합니다. 남극이 맺어준 소중한 인연들이니 언젠가 또 만날 수 있겠지요?>
저와 같이 방을 쓰고 있으시던 박사님도 떠나고, 저는 룸메이트가 없는 텅 빈 방에 홀로 남아 30주년 행사를 기다렸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귀빈들 및 기자들이 하나, 둘 차례로 기지로 들어왔고, 공간이 넓은 중장비동에서 행사를 시작하였습니다.<세종기지 30주년 행사 축하를 위해 해양수산부 장관님께서 방문해주셨습니다.>
정확히는 남극세종과학기지는 1988년 2월 17일에 완성되었으며,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다른 나라의 원조를 받아 한창 자라나야 했던 우리나라가 급속히 성장하여 이러한 극지까지 연구하는 선진국들 중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도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님의 축하 연설 영상을 시작으로, 극지연구소장님, 해양수산부 장관님을 비롯한 여러 귀빈들의 축하 연설이 이어졌습니다. 다들 장시간 비행으로 피곤하셨을 텐데 밝은 표정으로 말씀하셨고, 대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따스한 악수가 이어졌습니다. 기념 행사가 끝난 이후에는 2088년에 개봉예정인 타임캡슐 행사가 이어졌습니다. 이 날 보았던 문재인 대통령님의 축하 연설 영상과 국민들의 30주년 축하 인터뷰 영향을 함께 저장했다고 합니다. 과연 2088년에 저도 타임캡슐을 꺼내는 현장을 볼 수 있을까요?<세종기지 100주년인 2088년에 개봉할 타임캡슐을 넣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어서 30주년을 기념하는 역사관 개관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역사관이 상당히 잘 되어 있는데요, 기회가 되면 이곳도 꼭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척박하고도 미지의 땅인 이 남극에 연구를 위한 과학자들의 노력이 30년간 이어져왔습니다. 그 역사는 역사관 뿐만 아니라 세계에 보고된 놀라운 연구 성과들에, 어느새 나이가 지긋해진 1대 월동대장님의 뿌듯한 표정 속에, 이를 지켜보는 후학들에게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그 동안 극지 연구를 위해 힘쓰셨던 모든 분들과, 앞으로 힘써 나갈 우리 세대에게 응원을 전합니다.- 남극에서도, 열정 넘치는 연구 세미나!
<중형저서동물에 대해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발표해주고 계십니다.>
이 자리는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월동대원분들이 모두 모인 자리이기 때문에, 아주 학문적인 내용보다는 조금 더 친근하고 쉽게 발표를 하셨습니다. 남극에서 채집한 따끈따끈한 중형저서동물들의 소식에 여기저기서 찰칵찰칵 사진 찍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무쪼록 흥미로운 중형저서동물이 많이 발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남극의 새
<가야봉에서 내려다 보이는 멋진 경치!>
제가 가보았던 여러 봉우리를 생각해보면, 가야봉은 꽤 갈 만한 곳입니다. 숨이 턱턱 차오르긴 하지만 약 30분이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거든요. 가야봉을 올라 능선을 따라 조금 걷다 보면 자이언트 패트롤의 서식처가 나타납니다. 예민하여 스트레스에 취약한 새들이어서, 매우 조심스레 접근하였습니다.<며칠 사이 계속 눈과 비가 내려 카메라에 습기가 차있습니다.>
바톤 반도에 있는 자이언트 패트롤 중 일부는 스트레스로 인해 꽤 오랜 기간 번식을 하지 못하다가, 지난해 말에 번식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사진도 최대한 멀리서, 조심, 또 조심하며 촬영하였습니다.<자이언트 패트롤의 새끼입니다. 꽤 많이 자란 상태라 새끼임에도 불구하고 스쿠아 같은 어지간한 바다새와 비슷한 크기입니다.>
새끼 새들이 너무나 귀엽지만 오래 보고 있을 수는 없죠. 필요한 일만 끝내고 빠르게 자리를 옮겼습니다. 다음은 펭귄 마을 가는 길에 있는 자이언트 패트롤의 서식처입니다. 펭귄 마을에 가려면 지나갈 수 밖에 없는 곳입니다. 사실은 저희가 녀석들의 서식처를 침범하는 것이지요. 남극에 온 초창기 때에는, 이 새들의 압도적인 몸 크기에 무서워서 바들바들 떨며 이곳을 지나갔습니다. 지금은 이 녀석들에게 피해를 줄까 미안하고 조심스러워서 부들부들 떨며 지나가게 되었습니다.<펭귄마을 가는 곳 주변의 서식처. 자이언트 패트롤 한 마리가 앉아 있습니다. 얼핏 보면 주변 바위와 구분이 가질 않네요.>
일을 끝내고 후다닥 저녁을 먹고 나오니 피로를 풀어주는 멋진 풍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해가 저무는 남극 하늘. 아직 아기인 자이언트 패트롤들도 곧 저 멋진 하늘로 비상하겠지요. 아무쪼록 건강하고 무탈하게 잘 자라길 바랍니다.- 남극에서 맞는 설날
<만두피 반죽을 시작한 의료반 미인 선생님!>
<그 외 지글지글 익어가는 각종 전들>
설 명절의 열기(?)에 대부분 옷을 가볍게 착용했습니다. 저는 사실 집에서 보내는 명절 때 보다 더 많은 양의 녹두전을 부쳐야 했습니다. 처음엔 아주 동그랗던 녹두전이 시간이 가며 모양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모두 함께 합동 차례를 드리고, 몇몇 박사님들께는 세배도 드리며 덕담이 오고 갔습니다. 식혜와 수정과도 개봉되어 명절 분위기를 한껏 냈지요. 서울에서 먼 곳, 이 남극 끄트머리 섬에서 설 명절을 보낼 수 있다니. 많은 사람이 함께여서 즐겁고 새로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