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 2017 극지 하계 연구캠프_2남극해안조사
- 해표마을조사
<이날 점심 도시락(주먹밥)에는 계란후라이와 소시지도 들어가 있었습니다. 추가 반찬에 어찌나 행복한 마음이었는지! 저녁에 돌아가서 조리대원님께 따봉을 보내드렸습니다.>
밥을 먹고 나서 조사를 시작하자, 남극 하늘은 눈을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순식간에 시야가 나빠졌습니다. 그리고 눈이 부드러운 알갱이가 아니라 모래알처럼 단단하기 때문에 얼굴에 맞으면 따갑기도 하고, 뺨을 맞은 듯한 기분이 듭니다.<뭍에서 꽤 멀리 나간 것처럼 보이지만, 등산화를 신고 들어가도 될 정도로 매우 얕습니다. 물이 다 빠지면 커다란 조수웅덩이가 되며 그 넓은 조수웅덩이에는 다양한 해조류가 가득합니다.>
날씨가 더 나빠질까 걱정이 되어 수시로 세종기지 통신실과 무전을 하면서 최대한 빠르게 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이 날은 주변 해표 사진 찍을 여유도 없이 조사에만 집중했네요. 나중에 실험실에서 확인해보니 짧은 채집 시간에도 불구하고 해조류가 10종 가까이 되더군요. 놀라운 생물다양성이지요? 돌아가는 길에는 비상대피소에서 펭귄 조사팀을 만나서 함께 돌아갔습니다. 펭귄팀도 눈과 비가 계속 쏟아져 조사를 중단하고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눈비를 맞으며 조사를 했더니 오늘은 몸이 유난히 무겁네요. 내일을 위해 얼른 잠자리에 들어야겠습니다.- 세종곶 조간대 조사
<조간대 위 커다란 유빙. 몸소 (반올림하여) 160 cm 스케일바가 된 배한나 학생이 서 있습니다.>
<잔뜩 흐렸던 전날 날씨가 거짓말인 것처럼 멋진 햇빛이 파도에 차르르 퍼져나갑니다.>
<수질 측정을 하고 있을 뿐인데 그림같은 장면이 연출됩니다.>
이 날은 쾌청한 날씨에 처음 보는 새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저 멀리 펭귄 한마리가 꽤 큰 유빙 위에 올라가 있길래, 쟤가 어떻게 저기에 올라갔지? 하고 무심히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조사를 하며 가까이 가서 봤더니 펭귄이 아니었습니다. 색 조합은 유사하지만, 펭귄과 달리 훨훨 날 수 있는 가마우지였습니다.<유빙 위에 앉아 있는 가마우지. 이 날 하늘 너무 멋지지 않나요? 멀리 보이는 위버반도의 눈 덮인 산과 구름까지 완벽한 풍경입니다>
한편, 커다란 유빙들 아래에는 종종 해수와 유빙이 녹은 물이 섞여 웅덩이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주로 남극 조간대 해수가 33~34 psu 정도의 염도를 나타내는 것과 달리, 이 웅덩이는 약 18 psu 정도의 염도가 나타났습니다. 손으로 콕 찍어 맛을 봐도 ‘으음, 좀 밍밍하군’ 싶을 정도의 염도죠!
<유빙에서 뚝뚝 떨어지는 담수를 손으로 받아보는 호상 학생>
조사를 끝내고 이야기를 나누며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꼭 새처럼 생긴 유빙이 보여 이건 꼭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에 멋진 얼음새 위에 냉큼 올라타 보았습니다.
<혹시 한국까지 날아갈 수 있을까요?>
멋진 얼음새에게 실례를 좀 한 뒤 실험실로 돌아와 오늘의 샘플을 정리했습니다. 서른이 넘어 하기엔 좀 동화적인 생각이지만 우리 사이니까 하는 이야기인데, 오늘 꿈에는 얼음새가 나타나면 멋질 것 같습니다. 그러면 문득문득 그리운 한국에 들렀다 올 수 있겠죠?- 콜린스 하버 조사
이 곳의 풍경은 마리안 소만 빙벽 바로 앞에서 조사했던 환경과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두 지역 모두 암반 지대였고, 빙벽이 최근에 후퇴하면서 드러난 지역이기 때문에 환경이 비슷해서였을까요? 웅덩이에는 규조류가 뭉친 패치가 가득했고, 암반 곳곳에 녹조류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배를 타고 다른 곳으로도 이동해야 하는 일정이기도 하고, 지난번 마리안 소만 빙벽 인근에서 파도 때문에 급하게 빠져나와야 했던 일도 있어 서둘러서 필요한 부분부터 샘플링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하늘님은 저희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인근 지역 빙벽이 계속해서 무너지며 너울을 만들어내는 바람에 금방 조사를 접어야 했습니다. 빙벽이 무너지면서 마치 천둥이 치는 듯이 큰 소리가 계속해서 울렸고, 커다란 얼음 조각 네댓 개 정도씩 계속해서 바다로 떨어졌습니다. 저 멀리 바다 위에서 조사하고 있던 팀도 저희를 태우기 위해 조간대에 급하게 배를 접안했고, 다행히 저희는 무사히 섬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아직 조하대 탐사를 수행하던 팀은 조사를 끝내지 못했기 때문에 저희를 태운 이후에도 조금 더 조사를 수행하였습니다. 무인 잠수함을 조종하면서 바다 깊숙한 곳을 찍고 있었고, 간간히 생물이 조금씩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원하는 만큼의 결과는 얻을 수 없었는지 얼마 되지 않아 조사를 접고 기지로 복귀하였습니다. 조사를 급히 끝내긴 했지만, 오늘도 남극의 새로운 얼굴을 만나 반가운 하루였습니다.- 아들레이섬 조사
- 후퇴하는 빙벽과 조간대 조사
<잭 스패로우보다 멋진 우리의 선장님! 어디든 안전하게 조디악을 운전하시는 베스트 드라이버랍니다!>
조간대 가까이 다가가니 돌 위로 거뭇거뭇한 것이 잔뜩 끼어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며칠 간 강한 바람 탓에 조간대로 밀려 올라온 해조류인가 했더니, 규조류가 잔뜩 번성해 있었습니다. 체인형태의 규조류가 길게 이어져 실처럼 돌에 부착하여 서식하는 형태로, 현미경 관찰을 위해 바로 채집하였습니다. 추운 남극에 규조류가 이렇게 번성하고 있다니 신기한 일이지요?<햇빛을 받으며 엄청난 양으로 돌 위에 서식하고 있는 규조류들!>
규조류와 같은 일차생산자가 많다면, 다른 생물들도 많겠지요? 분명 중형저서동물이나 단각류도 있을 테니 꼭 찾아봐야겠지요? 어떤 생물종이 살고 있을지, 무엇을 먹고 살지! 송교수님께서 차가운 바닷물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열심히 채집을 해주셨습니다!<송교수님이 요각류를 잡기 위해 채집망으로 해안가를 몇 번 휘젓고 나자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규조류도 덩달아 잔뜩 채집되었습니다.>
나중에 실험실로 돌아왔을 때, 이 곳의 풍부한 규조류를 요각류가 섭식하는 재미있는 모습을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도 있었답니다. 사는 곳 주변에 밥이 가득하다니! 남극의 요각류는 꽤 행복할지도 모르겠네요.<작은 요각류가 주변의 규조류 사이에서 최후의 만찬을 즐기고 있던 모양입니다. 이 직후 행복했던 요각류는 알코올에 퐁당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고맙고 미안해, 요각류야!>
조간대 조사를 마치고 고개를 들어보니 멋진 풍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마치 호수처럼 잔잔한 빙벽 주변의 바다를 여러분도 한번 보시겠어요? 사진 실력이 부족해 눈으로 본 것 만한 감동을 전해드릴 수 없는 것이 너무나도 아쉽네요.<처음 왔을 때와 달리 빙벽이 꽤나 많이 무너져 있는 듯 합니다. 이렇게 빙벽이 자꾸 무너져 내려 빙벽이 슬금슬금 후퇴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무척 잔잔한 바다였지만, 저희가 조사를 끝내고 마무리할 때쯤 콰광! 하고 빙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곧이어 조간대 주변의 수위가 급격하게 낮아지더니, 급작스럽게 너울이 밀려들어왔습니다. 저희가 조사중이던 조간대는 꽤 넓어서 큰 위험 없이 해안에서 좀 더 떨어진 곳으로 피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더 급작스러운 너울을 이미 경험해본 뒤라 미리 예측하여 여유있게 피할 수 있기도 했구요. 저희는 한동안 바다가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기지로 되돌아왔습니다.<남극의 바다가 햇빛을 머금고 반짝입니다.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조사를 마치고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스르르 웃음이 나오며 행복해지고 맙니다.>
한국을 떠난 지 50일이 되었네요. 꽤 긴 시간 동안 남극의 여름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새롭고 아름다운 남극. 이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연구할 수 있어 참 감사한 나날들입니다. 약 3주간의 남은 기간 동안에도 무탈하게 조사를 마치고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펭귄마을 조간대 조사
<펭귄마을에 가다 보면 만나는 멋진 바위입니다. 표면을 덮고 있는 연두빛의 무언가는 바로 지의류입니다!>
바람이 많이 불어 몸을 웅크리고 가야 했지만, 발걸음은 가벼웠습니다. 물개가 떡 하니 길 한 가운데를 가로막고 있어서, 예기치 않게 언덕에 바짝 붙어 힘든 길을 가야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습니다(물개가 저희에게 성을 내며 우는게 무척 무섭긴 했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16092" align="aligncenter" width="4608"] <실제론 분명 성난 표정이었는데 사진은 이렇게나 귀엽고 온순해보이네요. 무척 억울합니다! >[/caption]<어린 젠투펭귄들이 무럭무럭 자라 마을 아래 조간대 근처까지 내려와 있었습니다. 사진 우측 상단 쪽을 보시면 펭귄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는데, 대부분 새끼들입니다. 일종의 보육원인 셈이지요!>
<돌 위에 팔자 좋게 늘어져 있는 새끼 펭귄이 보이네요. 그 옆에 있는 펭귄은 격렬하게 털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펭귄마을에 도착하여 보는 새끼 펭귄들도 정말 귀여웠습니다. 간만에 본 펭귄들은 털갈이가 한참이었습니다. 물 속에서 사냥하기에 적합한 신상 방수털로 갈아입는 중이더군요. 그런데 막상 조간대에 도착해보니 중요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간조 시간이 되었는데도 파도 때문에 물이 충분히 빠지질 않았습니다.<이렇게 맑은 하늘인데! 물이 빠지지 않는다니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해야 할 조사는 어떻게든 마쳤지만, 돌과 해조류를 뒤지며 못 보던 생물들을 실컷 구경하려던 저희의 바람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딱 저기까지 물 빠지면 못 봤던 생물 분명 찾을 수 있을 텐데…… 여기서 채집하고 싶은 해조류 더 있는데… 물이 더 빠져야 채집할 수 있는데…’ 아쉬운 마음에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야속할 정도로 예쁜 하늘과 바다를 꿈뻑꿈뻑 바라보았습니다. 그렇다고 바다에 뛰어들 순 없으니 아쉬운 마음을 애써 접고 기지로 복귀하였습니다. 세종기지가 바다 조사에 좋은 위치를 점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남극의 환경이 저희의 현장조사를 늘 허락해주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이따금씩 제 아름다움 가까이서 보게 허락해 줄 때면 피곤한 줄도 모르고 달려가 바다를 벅찬 마음으로 들여다보게 됩니다. 오늘 ‘더’ 가까이서 볼 순 없었지만 저는 사실 정말로 가까운 곳에서 남극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아마 제 평생을 두고 보아도 아주 특별한 순간인 것이겠지요. 하긴, 가끔 가까이 보게 해준다고 불평할 수는 없겠네요. 그럼 오늘도 늘 그랬듯 감사하며 하루를 마무리 해야겠습니다. 오늘도, 남극이라는 선물을 받아 감사한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