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 2017 극지 하계 연구캠프_1남극해안조사
- 펭귄마을 탐험
출처: 극지과학자가 들려주는 남극의 사계, 안인영 저 (2017)
저희는 지금 서울에서 17,240 km 떨어진 남극 한자락에 있습니다. 남극반도 끝자락, 킹조지섬, 세종기지에서... 세종기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남극과학기지로, 1988년 2월에 개소했습니다. 겨울철에는 바다가 꽁꽁 얼어붙지만, 우리가 방문한 여름철에는 바다가 녹아 해양 생물들을 채집하여 연구하기에 좋습니다. 세종기지는 정확히는 맥스웰만 동편에 있는 마리안 소만의 남쪽 해안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마리안 소만이 우리의 주요 연구 대상 지역이죠. 사실 시차적응도 덜 되었고, 피로도 덜 가셨지만 남극 조간대를 경험하고 싶은 마음에 몸이 근질근질했습니다. 다만, 갯벌에선 베테랑일지라도, 남극에서 초짜인 저희는 남극 베테랑 대원분들을 따라 펭귄마을로 향하기로 했습니다.
펭귄마을은 세종기지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펭귄마을로 향하는 길은 언덕을 넘어가는 길과, 해안가를 따라가는 두 가지 루트가 있습니다. 이 날은 안개가 자욱하여 언덕 대신 해안가를 따라가는 안전한 길을 택했습니다. 우리가 보고 싶은 바닷가를 실컷 볼 수 있는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자갈에 하얀 눈이 덮여 있기만 한 것 같았던 해안가는, 사실 신기한 것들로 가득했습니다. 조간대 표면 위의 눈을 초록빛, 분홍빛으로 물들이고 있는 조류(algae)는 어떤 종일까? 어떤 환경요인이 이들을 우점하게 하는 걸까? 해안가에 떠밀려온 해조류들은 어떤 종이고, 남극 생태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지?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황량해 보이던 남극 조간대를 가만히, 그리고 가까이 들여다보면 또 다른 놀라운 세상이 있었습니다. 돌 아래 숨어 살고 있던 갯지렁이류와 작은 편형동물, 고둥류가 있었고, 파도가 쳐서 생긴 스플래시 존과 조수웅덩이 안에는 요각류나 옆새우들이 있었습니다.
<돌 아래 숨어있던 작은 고둥류>
- 해표마을 조사
<눈밭 언덕을 낑낑대며 올라오면 펼쳐지는 펭귄마을! 녹색 조류들이 가득해 마치 초원같습니다>
<알 혹은 새끼를 품고 있는 펭귄들 주변으로 마치 방어진 같은 펭귄 똥이 지표면 위에 선명합니다>
위 사진 좌측 상단 쪽에 비상대피소도 보이네요. 붉은 네모모양의 컨테이너가 보이시나요? 저곳이 비상대피소랍니다. 바톤 반도에 유일하게 있는 비상대피소인데요, 급작스러운 기상악화에 대비해 몸을 피할 수 있는 장소랍니다. 다시 해표마을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온 만큼을 더 걸어가니 새끼 해표 한 마리가 자갈 길 한복판에 까맣고 큰 눈을 뜨고 저희를 말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녀석이 너무 놀라지 않도록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길을 지나갔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해표마을 조간대에는 이때까지 보았던 것 중 가장 다양한 저서생물이 살고 있었습니다. 삿갓조개, 편형동물, 고둥류, 두 종류의 다모류, 그리고 꽤 다양한 단각류. 암반에도 녹색빛의 조류가 부착해 있는 것이 보였고, 주변에 쌓여 있는 눈에는 초록빛, 분홍빛의 snow algae가 관찰되었습니다. 오늘은 소조기라 물이 많이 빠지지 않았는데, 대조기때 조간대에 오면 더 다양한 생물과 다량의 해조류를 관찰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암반에는 어떤 조류가 부착하여 살고 있을까요?>
조금 힘들긴 했지만, 다양한 생물을 관찰하기 위해 나중에 해표마을을 다시 조사해 보아야겠습니다. 오늘은 그저 맛보기였거든요! 남극 조간대는 역시 들여다보면 볼수록 많은 것들이 살아 숨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더 많이 보고, 느끼고, 공부해야겠습니다. 오늘도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어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돌 밭! 남극 조간대!
<조수웅덩이 주변 돌 위에 누런 연두빛으로 조류가 착생하여 살고 있습니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각자 채집 도구를 들고 열심히 시료를 주워 담기 시작했습니다. 한 명은 채집용 네트를 들고 바닥을 휘젓기 시작했고, 다른 한 명은 열심히 노랗게 변한 돌을 줍고, 다른 한 명은 근처에 보이는 생물들을 채집하였습니다. 특히 웬만해선 얻을 수 없는 조그마한 문어와 남극 대구 사체까지 발견하여 로또에 당첨된 것보다 더 기뻤답니다.
저희가 샘플링을 하고 있던 순간이 근처에 있던 펭귄에게는 마침 식사 시간이었나봅니다. 꽁지 정리도 하고, 차가운 물 속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운동도 하고 있네요.
저희는 이제야 여기서 엄청나게 많은 저서동물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아마 펭귄들에게는 오래 전부터 이곳이 유명한 무한리필 맛집으로 소문났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 첫 정기조사
<뒤집어져 있는 삿갓조개와 그 살을 파먹고 있는 단각류들>
기지 주변 해안에서 상당히 우점하고 있는 단각류였습니다. 꽤 큰 크기(1~1.5 ㎝)의 단각류라서 정말 이 단각류가 착생 규조류나 해조류를 먹고 살까, 하고 의문이 있었는데 눈이 번쩍 떠지는 모습이었습니다. 좀 징그럽기도 했지만, 신기하고 반가운 마음이 더 커서 얼른 채집하였습니다. 기지 주변 조사를 마친 뒤 간조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펭귄마을로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점심때가 다가오자 슬슬 배가 고팠지만 주린 배를 움켜쥐고 조사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조사를 위해 차디찬 남극 바닷물도 마다하지 않으시는 송교수님! 뒤쪽엔 1차 생산을 측정하는 김호상 학생을 펭귄들이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네요>
시린 남극 조간대에서 불꽃같이 조사를 끝냈습니다. 그리고 기다리던 점심시간!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그렇게 낭만적인 점심식사는 아니었습니다. 펭귄 언덕에서 펭귄들의 똥냄새(양계장 냄새와 흡사해요)가 바람에 실려 불어오고, 너무나 추웠거든요. 해서 점심을 먹는 동안 제대로 된 사진이 없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없어진 정신만큼 삐딱하게 기울어진 수평선. 그래도 저희, 웃고는 있었습니다.>
다 식어버린 주먹밥이었지만, 그래도 배가 부르니 몸은 따뜻했습니다. 따뜻해진 몸으로 돌아오는 중에도 주변 해안을 탐색했습니다. 더 많이 보고 싶고, 더 많이 알고 싶은 바다가 가까이에 있어 무척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저희는 내일도 행복하게 조사할 예정입니다.- 마리안 소만의 빙벽, 그리고 조간대
<너무 아름다워서 감동이었어요>
<잔뜩 행복해진 배한나 학생. 팔이 조금 짧아 보일 수 있는데, 착시현상입니다!>
이 아름다움을 뒤로 하고 바다쪽으로 돌출되어 있는 조간대 암반 지역에 접안하였습니다. 다이빙팀과 함께 나간 조사였기에 다이빙팀은 먼저 입수를 하였고, 저희는 부지런히 조간대 조사를 수행했습니다. 조사 도중 빙벽이 무너졌는지 급작스레 너울이 생겨 당황하기도 했지만, 안전히 조사를 마쳤답니다.
<다이빙 조사 수행 모습. 환상적인 광경이지요?>
- 어게인, 해표마을
<세종기지를 뒤로 하고… 다녀오겠습니다!>
대조기때 방문한 해표마을은 지난번과 확연히 달랐습니다. 훨씬 넓은 조간대와 커다란 조수웅덩이 등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저희가 함께 이동한 팀은 고영욱박사님 주도의 해조류 조사가 목적이었는데요, 정말 해조류가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해조류가 밀식하는 조수웅덩이에서 1차 생산을 측정하고 있는 김호상 학생>
오늘따라 유난히 해표들도 많이 올라와 쉬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이동하는 길과 매우 가까운 곳에서 쉬고 있는 탓에 소리를 죽이고 조용히 움직였습니다.
<해변에 올라와 쉬고 있는 해표 무리들. 해표들의 단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최대한 살금살금 움직입니다>
해표마을 조간대는 들여다볼수록 신기했습니다. 이때껏 본 적 없던 복족류가 해조류 사이에 숨어있는가 하면, 밀려드는 파도에는 단각류들이 버글버글했습니다. 한창 조사를 하다, 수질 측정을 하려고 고개를 들었더니, 뭍으로 올라오려던 해표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해표는 우리 집에 웬 불청객인가 하며 저를 쳐다보았고, 저는 수질 측정해야 되는데……. 하며 해표를 빤히 바라보며 뒤로 물러났습니다. 해표도 불청객들 때문에 심기가 불편했는지 다른 장소로 옮겨 가더군요.
<심기가 불편한 듯 불청객들을 빤히 바라보던 해표>
해표의 쉼터에 침입한 건 저희이니, 미안한 마음으로 빠르게 조사를 마쳤습니다. 좋은 물 때, 멋진 풍경, 신기한 동물들. 오늘도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해표마을 풍경>
- 위버반도 조사
위버반도는 바로 앞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이동하는 데에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조디악은 위버반도에 있는 비상대피소 앞에 저희를 내려주고는 다음 일정 때문에 급하게 연안에서 빠져나갔습니다.
위버반도 조간대에 대해서는 하나도 아는 바가 없어 우선은 주변 탐색부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시간이 아침 9시 반 정도였고, 오후 5시에 다시 데리러 온다고 했었으니 시간은 충분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비상대피소 왼편에 있던 암반 조간대 웅덩이였습니다. 물이 이곳까지 차올라서 섞이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이고, 오랜 세월에 걸쳐 파도가 바위를 만나 깨지면서 그 물방울들이 바위 틈에 고여 만들어진 것 같았습니다. 이 웅덩이 주민들 구성은 녹조류, 규조류, 요각류 정도로 단순해 보였지만 이런 작은 환경에서도 나름의 생태계가 유지된다는 사실이 신기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항상 그랬듯이 저희는 스파츌라를 사용해 돌에 붙어있는 조류들을 긁어내고 웅덩이를 막 휘저으면서 작은 요각류들을 채집하였습니다.
위버반도 조간대에도 눈이 녹은 물이 모여 개울처럼 흘러내리는 곳이 곳곳에 있었습니다. 개울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은 담수와 해수가 만나 염분이 크게 변하기 때문에 변화에 잘 견디는 녀석들이 살기 마련입니다. 이런 곳에서도 샘플을 하나 채집해서 분석해보려고 합니다.
세종기지가 위치한 바톤반도와 다르게 이 반도의 특이한 점이 있다면 해변가에 녹조류가 새카맣게 덮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톤반도에서는 초록초록한 착생조류나 해조류가 우점하는 해변이 우세했다면 이 곳은 비교적 거뭇거뭇한 돌들이 넓게 분포하고 있었습니다. 대신 여기에는 돌에 붙은 먹이를 긁어 먹는 삿갓조개를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도 특이했습니다.
어느덧 점심 시간이 되어 다시 비상대피소로 돌아갔습니다. 날이 춥지 않아 밖에 둘러 앉아 주방에 주문하여 가져온 주먹밥과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라면을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야외에서 적절히 간이 밴 참치 주먹밥을 뜨끈하고 얼큰한 라면과 함께 먹는 맛이란.
에너지를 보충하였으니 이번엔 색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바로 산 위에 있는 호수에 사는 빨간 요각류를 채집할 것이랍니다. 경사도 꽤나 급한데다가 오랜 시간 풍화 작용에 의해 깨진 돌 때문에 자꾸 미끄러져 오르기가 더욱 힘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마침내 호수가 있다는 높이까지 올라왔고, 힘들었던 것을 잊을 만큼 아름다운 광경에 매료되었습니다. 
각자 원하는 시료를 샘플링하고 내려가야 하는데,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올라왔던 곳으로 내려가기에는 경사가 너무 급해 안전하게 내려갈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시간도 벌써 세 시가 다되었기에 두 시간 안에 다시 비상대피소로 돌아가야 할 생각에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안전 문제 때문에 왔던 길보다는 다른 길을 찾기로 결정했고, 마침 다행히 같이 위버반도에 조사하러 왔던 다른 팀의 발자국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길잡이처럼 발자국을 따라 조심스럽게 따라가니 기지가 보이는 쪽까지 산을 타고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무사히 해변가까지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앞선 대원들의 발자취를 찾아 걸었습니다.>




스쿠아를 연구하는 팀원들과 함께 무사히 비상대피소에 복귀하여 기지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기지 주변에서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경험할 수 있어서 신기하기도 했고, 짧은 시간 안에 버라이어티한 조사를 한 것 같아 재미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