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홍학혀개오지붙이
안녕하세요! 따뜻한 카리브해의 맑고 얕은 산호초를 들여다보면, 부채산호 위에 표범 무늬 옷을 입은 듯한 작은 생물이 조용히 붙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주황빛 반점마다 검은 테두리를 두른 이 화려한 생물의 이름은 바로 홍학혀개오지붙이 Cyphoma gibbosum입니다.

<홍학혀개오지붙이, 출처: Blue Rides>
홍학혀개오지붙이 은 연체동물문(Mollusca) 복족강(Gastropoda)의 Ovulidae과에 속하는 바다 달팽이입니다. 이름만 들으면 홍학의 혀를 닮았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전혀 닮지 않았다고 합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연안에서 브라질까지, 카리브해와 멕시코만을 포함한 서대서양의 열대·아열대 얕은 바다에 널리 분포하며, 다 자라도 몸길이가 3 cm 안팎인 작은 생물입니다. 2017년 DNA 분석에서는 무늬가 조금씩 다른 개체들이 대부분 하나의 종으로 확인되어, 이 화려한 무늬가 종마다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한 종 안에서도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음이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눈여겨보는 이 화려한 무늬는 사실 껍데기가 아닙니다. 껍데기 자체는 희거나 옅은 분홍빛의 단조로운 색이며, 반점 무늬는 껍데기를 덮고 있는 외투막(mantle)의 색입니다. 위협을 받으면 외투막을 움츠려 껍데기를 드러내고, 죽은 개체에서는 이 색이 사라져 무늬 없는 껍데기만 남습니다. 이 사실을 모른 채 껍데기를 기념품으로 가져오는 관광객이 늘어 개체수가 줄었고, 지금은 여러 나라에서 채집이 규제되고 있습니다.

<홍학혀개오지붙이, 출처: Rolling Harbour Abaco>
그렇다면 이 생물은 왜 이렇게 눈에 띄는 모습으로 살아갈까요? 그 비밀은 먹이에 있습니다. 홍학혀개오지붙이는 부채산호, 바다채찍, 바다나리 같은 팔방산호류(gorgonian)의 폴립을 치설(radula)로 긁어 먹고 삽니다. 이 산호들은 포식자를 막기 위해 프로스타글란딘이나 테르펜 같은 화학물질을 만들어 두는데, 대부분의 동물에게는 맛이 없거나 독이 되는 물질입니다. 홍학혀개오지붙이는 이를 해독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고, 먹이의 방어물질을 몸에 지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눈에 띄는 외투막 무늬는 '나를 먹으면 맛이 없다'는 경고색(aposematism)으로 해석됩니다.

<홍학혀개오지붙이, 출처: One Earth>
한편, 홍학혀개오지붙이가 산호를 먹는다고 해서 반드시 산호에 해로운 것은 아닙니다. 달팽이가 지나간 자리에는 먹은 흔적이 남지만, 이동이 느리고 폴립만 긁어 먹기 때문에 산호는 대개 다시 자라납니다. 문제는 포식자가 사라질 때 생깁니다. 플로리다 키스의 산호초에서 큰 포식성 어류와 무척추동물의 접근을 막았더니, 평소에는 드물던 이 달팽이의 밀도가 19배로 늘고 팔방산호의 피해도 약 8배 커졌습니다. 호그피시, 닭새우, 복어류 같은 포식자의 남획이 곧 산호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수온 상승, 백화, 해양산성화로 산호초 자체가 약해지고 있어, 작은 달팽이 한 마리의 생존이 산호초 전체의 균형과도 이어집니다.
홍학혀개오지붙이는 산호 위에 알을 낳고, 부화한 유생은 한동안 플랑크톤처럼 떠다니다가 다시 팔방산호에 정착해 살아갑니다. 따뜻한 바다를 여행할 기회가 생긴다면, 부채산호 위를 조용히 들여다보세요. 산호 위의 작은 표범 무늬 달팽이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