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도둑게
안녕하세요!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에서 가을의 시작이 느껴지는 9월입니다.
이번 이달의 생물은 선명한 붉은 집게를 들고 육지와 바다를 오가는 도둑게 Chiromantes haematocheir (De Haan, 1833)입니다. 이름부터 호기심을 자아내는 도둑게는 분류학적으로 동물계(Animalia) > 절지동물문(Arthropoda) > 연갑강(Malacostraca) > 십각목(Decapoda) > 범배아목(Pleocyemata) > 게하목(Brachyura) > 사각게과(Sesarmidae) > 도둑게속(Chiromantes)에 속하는 갑각류입니다. 도둑게는 바닷가와 가까운 습한 육상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가는 반육상성 게입니다.

<도둑게, 출처: 국립해양생물자원관 MBRIS>
바닷가에서 게를 발견했는데 물속이나 갯벌이 아니라 풀숲과 돌축대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다면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둑게는 바닷가와 가까운 육상 습지나 냇가의 돌축대, 진흙 둑 등에 굴을 파고 생활합니다. 바다와 가까운 곳에 살면서도 항상 바닷물에 잠겨 지내는 것이 아니라, 습기가 유지되는 육상 환경을 주요 생활 공간으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도둑게’라는 재미있는 이름도 이러한 생활 습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도둑게는 우물가나 부엌처럼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까지 들어와서 밥이나 음식을 훔쳐먹기도 하고, 여름철에는 해안과 인접한 산지까지 올라가기도 합니다. 이처럼 게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기 어려운 장소에 불쑥 나타나는 습성에서 ‘도둑게’라는 이름이 생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선명한 붉은 집게다리를 가진 도둑게, 출처: 갯벌키퍼스>
도둑게의 갑각은 네모에 가까운 모양이며, 길이보다 너비가 조금 더 넓고 등면은 비교적 매끄럽습니다. 몸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청록색이나 청회색을 띠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마와 갑각의 앞옆가장자리는 연한 노란색 또는 붉은색을 띠며, 개체에 따라 갑각 전체가 붉게 보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선명한 붉은색의 집게다리입니다. 특히 수컷은 집게다리의 손바닥 부분이 매우 넓고 억세며, 움직이는 집게손가락인 가동지가 활처럼 휘어 있습니다. 이에 따라 집게를 닫았을 때 두 집게손가락 사이에 비교적 넓은 틈이 생깁니다. 걷는다리의 여러 마디에는 검고 뻣뻣한 털이 많이 나 있는 것도 도둑게의 특징입니다. 이렇게 털이 많은 것은 감각기로써 역할도 하지만 진흙 등이 붙었을 때 마르면 좀더 떨어지기 수월해지는 것도 특징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서해와 남해, 제주도 연안에서 도둑게가 발견됩니다. 국외에는 일본과 중국, 타이완 등 동아시아 지역에 분포합니다. 성체 도둑게는 주로 육상 환경에서 생활하지만, 번식과 초기 생활사에는 바다가 꼭 필요합니다. 도둑게의 포란 시기, 즉 암컷이 배 아래에 알을 품는 시기는 주로 7월에서 8월입니다. 알을 품은 암컷은 부화한 유생을 바다로 내보내기 위해 육상 서식지에서 해안으로 이동합니다. 성체는 주로 육상 환경에서 생활하는 반면 유생은 바다에서 발달한다는 점은 도둑게 생활사의 매우 흥미로운 특징입니다.
하지만 육지와 바다를 오가는 이러한 생활 방식은 도둑게에게 위험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해안도로가 육상 서식지와 바다 사이의 이동 경로를 가로지를 경우, 알을 품은 암컷이 해안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차량에 치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국내 연구에서도 번식 이동 중 발생하는 암컷 중심의 로드킬이 지역 개체군의 성비와 개체군 유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도둑게의 포란과 번식 이동이 집중되는 7–8월 밤에는 해안도로를 건너는 암컷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운전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육상 서식지와 바다를 오가는 포란한 암컷의 이동 경로가 안전하게 이어질 수 있도록 우리 주변의 작은 생물에게도 잠시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처럼 도둑게는 선명한 붉은 집게가 인상적일 뿐만 아니라, 성체와 유생이 육지와 바다라는 서로 다른 환경을 이용하며 살아가는 독특한 생물입니다. 초가을 바닷가와 가까운 숲길이나 돌축대, 습지 주변을 걷게 된다면 축축한 흙과 돌 틈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세요. 운이 좋다면 붉은 집게를 들고 재빠르게 몸을 숨기는 도둑게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상으로 육지와 바다를 이어주는 붉은 집게의 주인공, 9월 이달의 생물 도둑게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