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남극빙어
여러분은 남극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아마 많은 분들이 매서운 추위와 꽁꽁 얼어붙은 땅과 바다가 생각나실 겁니다. 오늘은 그 차가운 바닷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물고기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남극의 바다에는 남극암치아목에 속하는 물고기만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온이 매우 낮을 뿐만 아니라 약 2500만년간 다른 지역으로부터 고립된 남극의 환경에 적응한 유일한 어류인 셈입니다. 그 중에서 오늘 소개해드릴 남극빙어는 총 25종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Neopagetopsis ionah, 출처: 국립수산과학원>
남극빙어는 겨울엔 영하 2도까지 내려가 바닷물마저 얼어붙는 극한의 환경에서 어떻게 얼어 죽지 않을 수 있는 걸까요? 그 답은 특별한 단백질에 있습니다. 남극빙어는 체내에 부동액 역할을 해주는 결빙방지 단백질을 갖고 있어 차가운 수온에도 활동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헤모글로빈이 결여된 어류의 흰색 피(좌)와 헤모글로빈이 풍부한 어류의 붉은 피(우), 출처: Beers and Jayasundara, 2015>
남극빙어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피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피의 색은 붉은 색이죠. 하지만 남극빙어의 피는 투명한 하얀색입니다. 그 이유는 산소를 운반해주는 헤모글로빈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생명활동에 필수적인 산소는 어떻게 해결할까요? 남극 바다의 차가운 수온으로 인해 수중에 풍부하게 녹아든 산소를 큰 심장과 피부호흡으로 흡수합니다.<바닥에 붙어 있는 남극빙어, 출처: 구글이미지>
남극에서 살아남기 위한 남극빙어의 노력은 행동에도 나타납니다. 이들은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움직임을 최소화합니다. 이를 위해 부레도 없으며, 뼈도 가벼운 연골로 되어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조사를 위한 다이빙 중 마주했을 때에도 온대 바다의 어류들이 근처에 가기도 전에 도망간 것과는 달리 손으로 쓰다듬어도 마치 귀찮다는 듯, 한 뼘 정도 자리를 옮기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바닷속의 나무늘보인 셈이죠.<웨델해 남쪽 Filchner 빙붕 인근 해저의 남극빙어 대규모 집단 산란지, 출처: AWI OFOBS>
최근 남극빙어의 대규모 집단 산란지가 웨델해 남쪽 Filchner 빙붕 인근의 해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해당 산란지는 총면적 240 km2로 서울의 약 40%에 해당하는 대규모였습니다. 평균 3 m2에 하나씩, 총 6천만개 가량의 산란지가 확인되어 현재까지 확인된 최대규모의 어류 산란지로 보고되었습니다. 지름 약 75 cm의 산란지에는 1500~2500개의 알이 있었으며 대부분 한 마리의 성체가 알을 지키고 있었습니다.<알(가운데 반투명 알갱이들)을 지키고 있는 성체, 출처: AWI OFOBS>
남극빙어는 무척추동물뿐만 아니라 해표와 같은 대형 포유류에게도 중요한 먹이가 될 수 있는 남극 생태계의 주요 구성요인입니다. 하지만 남극이 지구상에서 온난화로 인한 피해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지역들 중 하나인 탓에 남극빙어의 서식지에도 빙하후퇴와 같은 급격한 환경변화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를 통해 이들의 생태를 파악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