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저서규조류
규조류(珪藻類)는 수 마이크로미터에서 수백 마이크로미터 크기를 갖는 미세조류(microalgae)의 일종으로서, 분류학적으로는 진핵생물역(Domain Eukaryota) - 원생생물계(Kingdom Protista) - 부등편모조식물문(Phylum Heterokontophyta) - 규조강(Class Bacillariophyceae)에 속한다. 규조류는 비교적 새롭게 지구상에 출현한 생물로서, 원시 포유류보다도 늦게 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알려져 있는 가장 오래된 규조 화석은 쥬라기 초기 때의 것이나, 화석이나 분자생물학적 연구 결과 등의 정황 증거들을 고려하여 보았을 때 규조류가 지구에 처음 출현한 것은 페름기 대 멸종 사건 (Permian Mass Extinction) 이후일 것으로 추정된다. (페름기 대 멸종: 약 2억6천만년 전 이전, 지금의 중국 아미산 부근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거대화산의 폭발로 인해 발생한 광범위한 화산재 구름 및 산성비로 인해 육상생물의 70% 가량과 해양생물의 95% 가량이 멸종한 사건) 이는 해양환경에 있어 매우 큰 생태적 공백을 가져왔을 것이고 규조류는 이러한 생태적 공백을 효과적으로 메꾸어 가며 번성하였을 것이다. 가장 최근의 학설에 따르면 이들 규조류는 두 번에 걸친 세포내공생(endosymbiosis)의 결과로서 지구상에 존재하게 되었다고 한다. ‘세포내공생’이라 함은 독자적인 유전정보를 가진 특정 원핵생물이 또 다른 원핵생물에 먹힌 뒤에 소화되지 않고 남아있다가 독립적인 세포내 기관으로 공생하게 됨으로써 새로운 생물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이론이다. 예를 들어 호기성의 광합성세균인 시아노박테리아(cyanobacteria)가 다른 혐기성 원핵생물에 사로잡힌 뒤에 세포내 기관인 엽록체의 형태로 공생하게 된 결과로서 광합성 진핵생물인 미세조류(microalgae)가 생겨났다는 설 등이다. 규조류의 경우에는 일차적으로 세포내공생에 의해 생겨난 미세조류가 또 다른 편모조류에 먹힌 뒤 2차적인 세포내공생이 이루어지게 되면서 최초의 ‘규조류’가 지구에 출현하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최근의 과학적인 설명이다.
규조류 연구는 현미경의 발달 속도와 비례규조류가 현미경적 크기의 생물인 만큼, 그 연구의 역사는 현미경의 역사와 궤를 함께 한다. 어느 영국 시골 신사가 1703년에 기록한 ‘직사각형과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진 많은 수의 예쁜 가지들’에 대한 언급이 아마도 규조류에 관한 역사상 최초의 기록일 것이다. 현미경의 아버지라 불리는 Leeuwenhoek 역시 같은 해에 규조류로 여겨지는 생물을 관찰하고 기록으로 남겼으나 그림이 정교하지 않아 어떤 종인지는 확인 할 수 없다. 1753년에 Baker는 진흙속에 사는 ‘곡식 낟알처럼 생긴 동물’을 기록하였는데, 규조류의 일종인 Craticula supidata를 관찰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18세기 후반에는 여러 다양한 규조류 종들이 기재되어 라틴학명을 부여 받았다. 한편, 규조류의 분류에 있어서 동물로 볼 것인지 식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이는 특히 단독세포로 존재하는 규조류의 운동성 때문이었는데, 당대의 저명한 규조학자인 Bory와 Ehrenberg 조차도 규조가 동물계에 속한다고 여겼다. 이런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1844년의 Kützing의 저술로서 여기서 그는 단독세포이거나 군체이거나에 상관 없이 모든 규조류를 식물로 분류하였다. 이때로부터 20세기초에 이르도록 규조류 연구의 발달 속도는 현미경 광학의 개발 속도에 제한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규조류 연구가 광학현미경의 발달을 견인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규조류 껍질(세포벽)의 구조가 현미경 렌즈의 테스트에 최적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규조류의 껍질은 유리질(SiO2 - 이산화 규소)로 이루어져 있는데, 견고하여 쉽게 마모되거나 분해되지 않을 뿐 아니라 매우 섬세하고 정교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이렇듯 광학 현미경에 의존한 규조류 연구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게 된 것은 1950년대 중반 전자현미경이 연구에 도입되면서부터이다. 이전에 광학현미경의 제한된 해상도에 의존한 관찰에서 벗어나, 규조류 껍질의 내부와 외부의 구조적 특징들을 나노미터 단위로 관찰하게 되면서 그 분류 체계가 급속히 발전하게 된 것이다.
지구상의 가장 중요한 일차생산자규조류는 흔히 개별 세포로서 존재하나 여러 개체가 한데 모여 군체를 이루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의 종들은 다른 미세조류와 마찬가지로 엽록체를 갖고 있어 광합성을 통해 스스로 양분을 생산해 내지만 극히 일부 종의 경우 외부영양분에 의존하여 살아가며 엽록체도 갖고 있지 않다. 이러한 종속영양성의 규조류 종들은 전세계적으로 10개 미만의 종들만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규조류를 한글로는 돌말이라고 이르는데, 아마도 강이나 냇가의 돌 위에 갈색의 얇은 막 형태로 규조류가 번성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게 불리우는 것이라 여겨진다. 우리나라의 물고기 중에 이런 ‘돌말’을 주된 먹이로 삼는 종들도 있는데, 그 대표적인 종이 깨끗한 강에 사는 고급어종으로 알려져 있는 은어이다. 흔히 은어 몸에서는 비린내가 아니라 수박향이 난다고들 하는데, 아마도 동물성 먹이가 아닌 식물성 먹이인 규조류를 먹고서 몸집을 불리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또한 규조류는 가장 중요한 일차생산자 중 하나로서 지구 전체 일차생산량의 약 20% 가량을 책임지는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종 수에 있어서도 그 다양성이 매우 높은데, 현재 약 만종이 알려져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10만여 종이 존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식지 역시 매우 다양하여 담수, 기수, 해수 등의 수중환경 뿐 아니라 축축한 토양이나 이끼 등의 육상환경에서도 관찰된다. 또한 고온의 온천 (~50℃), 강한 산성수 (~ pH 3.5), 고염분의 염전이나 호수 (~150‰), 그리고 극지방의 빙산 내부에도 서식하고 있음이 알려져 있다. 생태적인 관점에서 규조류는 서식지의 범주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부유성 규조류이며 다른 하나는 저서성 규조류이다. 부유성 규조류는 수중에 뜬 상태로 광합성을 하는 종들로서, 일단 가라앉게 되면 광합성을 하지 못하게 되어 생존할 수 없으므로 부력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그 형태가 적응해 왔다. 예를 들자면 둥글고 넓은 형태를 띄어 세포의 표면적을 넓힌 다던지, 여러 개의 긴 돌기를 가진 다던지, 세포내에 지방성분을 축적하여 비중을 낮춘 다던지, 그렇지 않으면 여러 개체가 모여 사슬 모양의 군체를 이룬 다던지 하는 등의 다양한 전략을 갖는다. 반면 저서성 규조류는 퇴적물, 돌, 토양, 식물체 등의 표면에 기대어 살아가는 종들로서 드물게는 동물의 껍질이나 다른 종의 규조류 세포에 붙어 살기도 한다. 이들 저서성 규조류는 지구생태계의 관점에서 갯벌과 같은 수심이 얕은 천해 환경에서의 일차생산을 대부분 책임지고 있다. 또한 저서성 규조류의 대다수는 식물임에도 불구하고 운동성을 갖고 있는데, 이러한 운동성은 ‘raphe’라 불리는 특정 구조와 관련되어 있다. Raphe는 또한 규조류가 세포 외부와 물질을 교환하는 통로로 이용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과학기술에 다양하게 활용되는 소재이처럼 규조류는 높은 생물다양성과 생태적 중요성을 가질 뿐 아니라 아름답고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다양한 과학과 기술 분야에 응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호수나 해저를 시추한 지질 시료로부터 규조류 껍질을 분리하여 그 종의 구성을 분석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하여 과거의 온도 변화, 산업화에 따른 호수의 산성화, 그리고 해수면 변화 등을 추적할 수 있다. 최근에는 기후변화와 관련하여서 대양에 철 이온을 대량으로 투입하여 규조류의 대번성을 인위적으로 이끌어 냄으로써 대기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크게 낮추고자 하는 시도도 이루어 지고 있다. 또한 규조류는 자연과학 이외에 여러 산업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규조토(규조류가 대양에서 대량으로 번성하다 죽은 후 그 껍질이 한 곳에 쌓여 형성된 퇴적물)는 음료수 거름장치, 살충제, 그리고 다이너마이트 제작 등에 널리 이용되어 오고 있다. 공학의 영역에서는 규조류 껍질의 정교하고 미세한 구조를 나노공학의 소재로 이용하고자 하는 시도 역시 이루어 지고 있으며, 규조류에 기반한 신물질 연구들 역시 상당 부분 성공을 거두고 있다.
저서규조류 사진전 사진 1. 부유성 규조류의 광학현미경 사진. 여러 개의 둥근 세포들이 일렬로 연결되어 긴 사슬모양을 이루고 있다. 사진 2. 저서성 규조류의 광학현미경 사진. 유리질의 투명한 껍질과 땅콩모양의 커다란 엽록체가 뚜렷이 보인다. 사진 3. 여러 개체의 규조류를 포식한 해양성 아메바의 광학현미경 사진. 규조류는 아메바와 같은 원생동물로부터 물고기와 같은 척추동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물의 에너지 공급원이다. 사진 4, 5. 갯벌 퇴적물내 규조류 종들의 광학현미경 사진. 두 사진을 비교해 보면 퇴적물 입자 사이로 규조류가 이동함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사진 6-10. 여러 다양한 속(genus)의 규조류들에 대한 광학현미경 사진들. 사진 6. Amphora 속(genus)의 광학현미경 사진. 사진 7. Diploneis 속(genus)의 광학현미경 사진. 사진 8. Fallacia 속(genus)의 광학현미경 사진. 사진 9. Petroneis 속(genus)의 광학현미경 사진. 사진 10. Pinnularia 속(genus)의 광학현미경 사진. <by Benth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