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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과 바다는 만나야 한다]‘갯벌국립공원’은 꿈일까…꼬물거리는 연안, 광포만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ㆍ개발 손타지 않은 연안 해질녘 붉게 노을이 내린 경남 사천 광포만은 ‘보러 오길 잘했다’는 마음이 절로 샘솟게 만들었다. 강과 바다가 만나 자연스럽게 오가고, 멀리 지리산이 한눈에 펼쳐져 보이는 풍광은 국내 어디에서도 쉬 찾기 어려운 비경이었다. 지난달 31일 찾은 사천 광포만은 사천시 서포명 조도리와 외구리, 곤양면 대진리와 환덕리 사이에 형성돼 있다. 북쪽으로 깊숙이 올라가 있는 사천만의 일부로, 하동 쪽에서 흘러오는 곤양천 물이 사천만으로 흘러들어가기 전 유입되는 곳이다. 광포만 일대에선 지리산이 노고단부터 천왕봉까지 한눈에 보인다. 해질녘 경남 사천시 광포만 광포나루에서 한 어민이 배를 몰고 나가고 있다. 광포만은 경남에서 갯벌이 가장 잘 보전돼 있어 해양수산부가 연안습지보호지역 지정을 검토하고 있다. |사천환경운동연합 제공 광포만은 멸종위기 생물인 대추귀고둥 1000여개체가 서식할 뿐 아니라 역시 멸종위기인 갯게, 붉은발말똥게, 흰발농게 등도 많이 살고 있다. 강물과 바닷물이 오가며 마주치는 곳이다 보니 다른 강들에서는 대부분 사라진 재첩도 여전히 채취할 수 있다. 국내 최대의 갯잔디 군락도 형성돼 있다. 다양한 철새가 찾아오는 광포만은 흑두루미가 북쪽에서 출발해 일본 이즈미로 이동할 때 중간 기착지로 삼는 곳이기도 하다. 이날 광포만 답사에 동행한 경남 생명의숲 윤병렬 운영위원은 “4대강사업으로 낙동강 해평습지가 망가진 후 흑두루미 중간기착지로서의 가치가 더욱 높아진 상태”라고 말했다. 이들 멸종위기 생물들은 광포만에서 추진된 여러 차례의 매립계획을 무산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수십년 전에는 매립을 시도한 업체가 도산하면서 개발이 무산됐지만, 최근 10여년 동안 개발계획을 막은 데는 바로 이들 멸종위기 생물을 찾아낸 환경단체 활동가와 연구자들의 공이 컸다. 광포만 갯벌은 ‘죽은 갯벌’이고 ‘아무것도 안 산다’며 개발을 추진하던 사람들의 논리를 무너뜨린 것이다. 해양수산부가 새로 광포만을 연안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하려고 검토하는 이유도 이처럼 높은 생물다양성과 보전 상태에 있다. 현재 사천 지역의 여론 역시 개발보다는 순천만처럼 갯벌을 잘 가꿔 생태관광지로 탈바꿈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보호지역 지정에 주민 찬반 의견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점을 감안하면, 광포만의 연안습지보호지역 지정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해양수산부는 광포만을 포함해 충남 서천과 태안에 걸친 가로림만, 전남 신안군 비금도와 도초도, 인천 무의도 등 4곳을 새로 연안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하려 하고 있다. 환경단체와 해당 지역 주민들은 늦었지만 꼭 필요한 조치라며 반기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국내 갯벌 면적에 견줘 보호지역이 너무 적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연안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돼 있는 갯벌은 모두 12곳(218.9㎢)이다. 전체 갯벌 면적의 8.8%에 불과하다. 현재 정부가 검토 중인 4곳이 모두 보호지역으로 지정돼도 전체 갯벌의 20% 미만이다. 4곳 중 가로림만은 개발사업 저지를 위해 지자체와 주민이 함께 보호지역 지정을 요청하고 있다. 가로림조력발전 측이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를 지난해 10월 환경부가 반려하면서 조력발전댐 건설사업이 무산된 줄 알았던 주민들은 지난 1월 정부가 ‘사업 준비기간’을 2020년까지 연장하면서 뒤통수를 맞았다. 이로 인해 개발사업의 원천적 봉쇄를 위해 보호지역 지정을 추진하고 나선 것이다. 전문가들은 광포만과 가로림만처럼 이름난 갯벌들뿐 아니라 전국 곳곳의 크고 작은 갯벌들이 개발 압력에 직면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연안습지보호지역 지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국내 갯벌 전체를 아우르는 보호구역 개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의 네덜란드, 독일, 덴마크가 와덴해 전체를 국립공원 등의 보호지역으로 지정해 관리하는 것이 좋은 사례다. 연안습지보호지역 지정을 검토 중인 인천 무의도 갯벌. |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고철환 명예교수가 주장하는 개념도 서남해안 전체 갯벌을 ‘느슨한 형태의 갯벌 해양국립공원’으로 지정하자는 것이다. 해양국립공원은 아직 국내에 도입되지 않은 제도로, 현재 국립공원에는 보호대상을 육지와 섬으로 국한한 해안국립공원과 해상국립공원만이 존재한다. 고 교수는 법 개정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해양수산부가 바다의 일부인 갯벌을 관할하고 있으므로 국립공원법 개정을 통해 ‘국립공원 대상지 중 해양은 해수부가 관할한다’는 식의 조항을 추가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습지보전법’에서 습지를 내륙습지와 연안습지로 나누고, 관리 권한을 환경부와 해수부로 나눈 것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는 “보호 강도는 느슨하게 해 ‘대규모 개발은 금지한다’ 정도의 내용을 넣고, 보호지역을 넓게 설정하는 방식의 갯벌바다보호법 제정도 가능할 것”이라며 “유럽 와덴해처럼 서남해안 갯벌 전체를 갯벌바다로 명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갯벌을 매립해 대규모 개발을 추진하려는 시도만 막아도 갯벌 보호의 대부분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고 교수는 한국 서남해안 갯벌을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로 학계에 소개한 인물이다. 그는 광포만처럼 산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점을 한국 갯벌의 경관적 우수성으로 꼽고 있다. 중국이나 유럽의 갯벌은 드넓기는 해도 육지와 산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전체 갯벌을 보호지역으로 지정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고, 지역 주민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힐 가능성도 높다. 기존처럼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보장된다고 해도 일단 보호지역 지정엔 반대부터 하고 보는 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결국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던 2003년 이전과 같은 사회적 갈등과 합의 과정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당시 난개발 몸살을 앓아온 백두대간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는 주장을 환경단체들이 들고 나오고, 여론도 백두대간 보호 쪽에 무게가 실리면서 백두대간보호법이 제정됐다. 이 법에 따라 2005년 산림청이 26만3427㏊ 면적을 백두대간 보호지역으로 지정한 바 있다. 고 교수는 “한반도의 동쪽에는 백두대간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서쪽에는 갯벌바다가 북에서 남으로 흐른다”며 “‘백두대간보호법’에 평행해서 ‘갯벌바다보호법’을 만들면, 육지와 바다의 핵심지역을 짝으로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취재지원 :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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