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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안보인 불산 누출사고 대응"
안병옥 박사(86석사)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 전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안병옥의 생태이야기] '인간'이 안보인 불산 누출사고 대응
자정을 막 넘긴 시각이었다. 저장탱크 콘크리트에 균열이 생기면서 어둠 속으로 27t이 넘는 유독가스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1차 세계대전 때 독가스로 쓰인 포스겐과 시안화 가스가 섞인 맹독성 가스 메틸이소시아네이트였다. 공기보다 무거운 가스는 바람이 불지 않는 날씨 탓에 지상에 낮게 깔린 채 도시의 구석구석으로 스며들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깊은 잠에 빠져있던 사람들은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과 질식감을 느끼며 깨어났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멀리 도망치려고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렸지만 소용없었다. 가스가 퍼져나가는 속도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겁게 가라앉은 가스는 키가 작은 아이들부터 덮쳤다. 주민들은 하나둘씩 극심한 호흡곤란과 폐부종 증상을 보이며 죽어갔다. 그날 아침에만 2000여명이던 사망자 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 불과 3일 만에 1만명에 달했다. 도시 곳곳에서 집단매장과 화장으로 악취가 코를 찌르고 시신들은 인근 나르마다강에 던져졌다. 아우슈비츠가 따로 없었다. 1984년 12월3일 미국계 회사 유니언 카바이드의 살충제 제조공장에서 발생했던 인도 보팔 대참사 장면이다.
구미에서 일어난 불산가스 누출사고는 보팔 대참사와 여러모로 닮았다.
"동네가 아수라장이야. 고함지르고 울고불고 살아있는 사람은 소리 지르고 완전히 전쟁터였어”라는 봉산리 주민들의 증언 때문만은 아니다. 두 사고는 피해 규모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발생원인과 대처방식에서는 놀라울 만큼 비슷한 점을 보인다. 보팔 사고는 냉각시스템과 경보기, 세정기 등 안전장치들이 잇달아 무력화되면서 발생했다. 안전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이유는, 현지 인도인 노동자들이 영어로 된 기기 매뉴얼을 이해하지 못해서였다고 한다.
구미 휴브글로벌 현장에서도 매뉴얼은 갖춰져 있었다.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을 뿐이다. 공기와 접촉하면 불산으로 변하는 불화수소 가스는 소량만으로도 인체와 환경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최상위 독극물이다. 하지만 누구도 안전장비를 착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가스가 수시로 새어나올 수 있는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관리감독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커다란 구멍은 정보공개에서도 뚫려 있었다. 보팔 주민들은 대부분 유니언 카바이드 공장이 독가스처럼 위험한 물질을 다루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가 참변을 당했다. 구미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환경부의 화학물질 배출량 조사·공개 시스템은 종업원 30인 이상인 업체에만 적용된다. 종업원 수가 적은 휴브글로벌이 빠질 수 있었던 이유다. 종업원 10인 이상의 사업장을 대상으로 화학물질 배출량 조사를 하는 미국 기준이 적용됐더라면 어땠을까.
허술한 사고수습으로 피해를 키웠다는 점도 별반 다르지 않다. 보팔에서는 참사 발생 후 갖가지 유언비어가 떠돌았다고 한다. 인도 정부가 공장 출입을 제한하면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혼란을 가중시켰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입은 건강피해와 관련된 정보는 1994년에야 공개가 허용됐다. 구미에서는 초기 부실대응이 화를 키웠다. 놀라운 것은 국립환경과학원의 안이한 판단으로 대피했던 주민들을 귀가 조치시켰다는 사실이다. 정밀기기를 갖췄음에도 간이검사만 하다가 정밀검사는 사고 발생 12일 만에 착수했다. 생명과 건강을 귀하게 여기는 국가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화학물질 수는 4만3000여종이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신규 화학물질 400여종이 시장에 진입한다. 따라서 화학물질 사고를 완벽하게 예방하는 일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국제기준에 견줘 한참 떨어지는 한국의 관리수준이다. 유통되는 화학물질의 85%가 유해정보조차 없는 상태인데다, 사고 관리시스템도 유럽의 중대사고보고시스템(MARS)을 따라잡으려면 아직 멀었다. 하지만 정책 개선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얼굴’을 한 국가의 철학을 세우는 일이다. 그건 “소가 상당히 고통이 심했어요. 사람이 그렇게 아픈데 얼마나 아팠겠어요”라는 주민들의 심정을 헤아리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