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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지와 사람들"
신형철 박사(89석사)
한국해양과학기술원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
24차 남극세종과학기지 월동연구대장
지금 남극 세종기지에는 제24차 월동대가 상주하여,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18명으로 구성된 월동대의 대장으로, 밀폐된 공간에 모인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조화롭게 이끌고 있는 이는 신형철 대장이다. 이미 남극에만 열 번 넘게 온 경험이 있는 ‘극지 베테랑’은, 월동대의 활기와 조화에 대해, 남극의 얼음보다 더 두꺼운 대원들의 노력과 그들 사이의 신뢰 덕이라고 했다. 극한의 환경에서 일상의 삶을 유지하며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월동대의 삶을 들여다본다.
“자랑스러운 대원들에게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남극의 세종기지에 월동대가 존재하는 이유는 세종기지가 우리나라 극지연구의 거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제라도 필요한 연구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만반의 상태를 늘 유지해야 한다. 준비 상태를 유지하는 것에서 나아가, 연구가 연중 이뤄져야 하는, 그러니까 반드시 월동을 필요로 하는 연구가 있기 때문이다. 연구 외적인 목적을 꼽자면 다른 나라의 남극기지 및 프로그램과 교류하는 민간 외교의 역할도 있다.
저마다 다른 꿈을 품고 남극으로
“남극기지에는 저처럼 극지연구소 직원도 있지만,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채 혹은 타기관 파견을 통해 남극에 옵니다. 극한의 환경에서 일상을 유지해야 하니, 전기를 만드는 사람, 중장비를 움직이는 사람, 식수 공급을 책임지는 사람,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 건강을 책임지는 의사 등 참 다양한 사람이 한 곳에 모이게 됩니다. 저마다 다른 꿈과 기대를 갖고 온 사람들이 함께 생활을 하는 셈이지요. 생면부지의 상태에서 만나 알아가고 팀워크를 만들어가며 1년의 세월을 보냅니다.”
신형철 대장은 월동대 18명의 안위와 생활을 책임지고 있다. 각자 관심사도 다르고 개성도 다른 이들을 아울러 얼음의 대륙에서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밀폐된 공간이지만, 이 공간 안에서도 출근과 퇴근이 있고, 토요일과 일요일이 있다. 물론 사무실과 집의 거리가 몇 발짝 안 되긴 하지만 말이다.
월동대의 연구활동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연중 계속 이어져야 하는 연구는 겨울에도 이어져야 하기에 바깥에서 샘플을 채취하고, 변화를 살피는 일이 지속적으로 있다. 하지만 눈보라가 거셀 때는 밖에서 일을 할 수 없으니, 날씨가 좋은 날이라면 일요일이고 뭐고 없이, 일을 한다. 바람이 잔잔하고 바다가 고요할 때는 새벽에 나가기도 한다.
이처럼 극한의 환경에서 일을 하는 연구원들의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것은 신형철 대장의 몫일 터. 일하는 시간이 아니라면, 대원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한다. 대원들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책이나 영화를 보기도 하고, 가까운 곳으로 소풍을 가기도 하고, 스키를 타기도 한다.
날씨와 상관없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대원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조리대원을 위해서는, 다른 대원들이 주일마다 돌아가며 요리를 맡는다. 이것 역시 일이라 느끼면 무척이나 부담스럽겠지만, 주말의 요리는 작은 축제처럼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경쟁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졌어요. 매주 테마를 달리해서 특별한 요리를 만들지요. 중국요리, 이탈리아 요리처럼 나라별로 테마를 꾸미기도 하지만, 어떨 땐 ‘뷔페식으로 차린 기사식당’을 차려서 취향대로 마음껏 먹기도 합니다. 아, 간혹 열량 특집도 합니다. (웃음) 저희 대원들이 다재다능해서 못 만드는 것이 없을 정도입니다. 막걸리, 청주도 다 직접 담그고, 얼마 전 빼빼로데이에는 빼빼로도 직접 만들어 먹었다니까요. (웃음)”
신형철 대장이 처음 남극에 발을 디딘 건 19년 전, 대학원 다니며 극지연구소에서 잠시 임시직으로 일하다가 5차 월동대원으로 남극을 처음 찾았다. 1년의 월동기를 마치고 유학을 떠난 신 대장은 이후 남극해양생물학을 전공했다. 그 뒤 남극 바다만 열 차례 넘게, 북극에도 네댓 번 다녀와 지금에 이르렀다.
그동안 연안 기지보다는 배를 타고 극지의 바다에서 연구활동을 주로 해왔지만, 기지를 거점으로 한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위해, 그리고 누군가는 세종기지에서 겨울을 나야 하기에 이번 월동대에 참가했다.
달라진 남극, 변함없는 남극
“그때와 지금은 많이 다르죠. 애인과 이별을 해도 이별을 통보하는 편지는 한 달만에 도착했어요. 스포츠신문 한 달치가 한꺼번에 오기도 했고. 지금은 인터넷으로 이메일은 말할 것도 없고, 트위터며 페이스북까지 할 수 있어요. 물론 변함없는 사실도 있죠. 겨울로 접어들수록 해가 짧아지고, 제한된 공간에서 생활해야 하는 이들의 외로움과 향수병, 예민함… 이런 것들은 변함이 없죠. 남극은 여전히 위험하고, 동시에 가치 있는 곳이란 사실도 그렇고요.”
가장 풀리지 않는 문제는 사람 문제다. 하지만 동시에 위로도 사람에게서 나오는 법이다. 그래서 함께 있는 사람끼리 잘 맞으면 때와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 신형철 대장은 함께 겨울을 나는 대원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
“우리 대원들, 에너지가 넘칩니다. 사고 소식에는 반사적으로 달려가고, 다른 기지에서 도움을 요청하면 서슴지 않았습니다. 중국이나 러시아 기지 모두 우리들의 에스코트가 있어야 움직일 정도였죠. 언 바다를 처음 건널 수 있었던 건, 얼음에 수없이 많은 구멍을 내가며 얼음의 두께와 상태를 확인하고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대원들이 참 자랑스럽고 사랑스럽습니다. 이곳 남극에서, 자연과 싸우기보다 자연과 대화하고 협상하는, 그래서 매일 같아 보여도 조금씩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느끼는 시간들이었으면 합니다.”
<글 : 서승범 자유기고가(bumbear@gmail.com), 사진 : 이병길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