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식] 동문 > 남극 얼음바다에 취(醉)하다
“남극 얼음바다에 취(醉)하다"
안인영 박사(84석사)
한국해양과학기술원 (KIOST)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 생물연구부장
“해양생물학과 남극바다의 만남은 도전과 환희의 극치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처럼 가슴 뛰는 감동은 오랜 기간의 전문적 훈련과 인고의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얻을 수 있다”
자연과학 중에서도 자연을 직접 접해야 하는 해양학과 같은 분야는 그 성과가 나타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많은 노력에 비해 결과가 잘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정말 자기가 좋아하지 않으면 꾸준히 할 수 없다. 또한 틀에 박힌 암기 위주의 학습이 아닌 체험의 누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해양학은 해양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자연과학을 일컫는다. 해양학과를 가거나 또는 일반 자연과학 학부를 선택하고 대학원과정에서 해양학을 공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문적 수준의 연구를 하기위해서는 해양학과를 가던 다른 학부를 가던 생물, 물리, 화학, 지질학 등 전통적인 분야 중 한 분야를 선택해서 기초부터 철저하게 배워나가야 한다.
나는 대학에서 해양학에 대한 포괄적인 공부와 생물학에 대한 공부를 하였다. 그 중에서도 해양생태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하였고, 박사과정에서는 해양저서무척추동물의 생태를 전공하였다. 일반생물학과에서 배우는 생태학과 다른 점은 ‘해양’이라는 환경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해류와 조류 등 해양의 물리적 순환, 해수의 화학적 성분, 조간대와 해저퇴적물, 대륙붕 등에 관한 지질학적 지식들은 해양생물과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즉 일반생태학에 비해 해양생태학은 보다 종합적이고 다학제적인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해양학을 전공하고 귀국한 나는 바로 남극연구를 시작하게 되어 20여 년간 남극 해양생태계를 연구하였다. 즉 30여년의 해양학자로서의 나의 경력에서 한국의 해양생물을 연구한 경험은 수 년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기간을 국외에서 연구한 셈이다. 그러나 해양학이란 학문은 매우 스케일이 큰 학문이고, 최근의 핫이슈인 기후변화도 글로벌한 현상이기 때문에 남극에서의 오랜 연구 경력은 오히려 거시적 관점에서 문제 해결에 접근하는 시각을 갖게 해 준 것 같다.
또한 남극의 해양생물을 연구하면서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과학적 사고의 틀을 깰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얼음이 둥둥 떠 있는 바닷속에 다양한 해양생물이 살고 있는 것이 너무나 경이로웠다. 다른 종이긴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성게, 불가사리, 조개, 어류, 말미잘, 갯지렁이 등이 남극의 바닷속에도 있었다. 춥기 때문에 생물이 서식하기 힘들것이라는 것은 지극히 틀에 박힌 생각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남극 해양생물들은 찬 바닷물에 오랜 기간 적응하면서 진화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지구온난화와 같은 급격한 온도 변화가 이들에겐 재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세종기지에서 나는 해양생물연구팀과 기후변화가 남극해양생물들과 생태계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지 연구하고 있다. 세종기지가 위치한 지역은 빙하가 계속 무너져 내리고 있는 등 온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생태계 영향이 어느 곳보다도 크게 우려되고 있다. 그동안의 축적된 연구결과를 토대로 현재 인류 최후의 원시적 자연환경을 보존하는 과학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2013년 1월 19일 남극세종기지에서 바람이 몹시 부는 날에>